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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83> 광복회 부준효 파주지회장

입력 : 2019-02-21 10:23:44
수정 : 2019-02-21 10:31:14

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83> 광복회 부준효 파주지회장

 

반쪽광복에서 온전한 광복을 향하여.”

친일적폐청산으로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야

 

▲2018년 3.1절 만세행진에 앞장서고 있는 부준효 회장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이다.

각국에서 헌법을 제정할 때는 거대한 논쟁이 일어난다. 군주정치냐 민주정치냐, 제한선거제냐 보통선거제냐, 신분·계급을 두느냐 아니면 일체평등이냐 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 논쟁은 우리에겐 이미 철 지난 것이었다. 기미년 대혁명의 덕분이었다. ‘민주공화제대한민국을 탄생시킨 원동력이 된 사건은 혁명으로 부르기에 충분하다. 그 민족-민주혁명의 기념일인 31일을 대한민국 건국기원절로 새기자.”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이다> 칼럼에서

 

“3·1혁명은 중국 신해혁명, 러시아혁명과 함께 유라시아의 3대 혁명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겠다. 무엇보다 기본가치로 볼 때 체제를 완전히 변혁하고자 했다. 첫째로 자주독립을 선언하고 일제 식민지배를 거부하였으며, 둘째로 4000년 동안 내려온 봉건왕조를 거부하고 민주공화주의를 주창했다. 셋째, 여성이 역사 현장에 주체적으로 등장하여 신분, 세대를 넘는 범민족적 항쟁을 벌였다. 당시 피검자 19,525명 중 학생과 교원이 2,355명인데, 이 가운데 여성이 218명이었다. 여성의 취학률이 남성의 100분의 1도 안 될 때이니 대단한 숫자다. 넷째, 전근대적 신민의식이 근대적 시민의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박창식 한겨레 논설위원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 칼럼에서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3.1운동이라 하여 그 역사적 의미가 많이 폄훼되어있지만, 일제하 독립운동가들이 기미년의 사건을 ‘3·1혁명으로 파악했듯이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참여자가 2백만명, 당시 조선인의 10%가 만세운동에 참여했고, 3월부터 3개월동안 한국인이 있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 독립선언을 했다. 일제의 집계로 희생자는 7,500명이라 했지만, 박은식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은 2만명이 사망했고, 옥살이 한 사람은 5만명을 넘었다.

올해는 3.1운동이 100주년 되는 해이다. 백주년을 맞이하여 3.1운동의 의의를 새기는 다양한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파주의 자유로요양병원이 독립 유공자 지정병원이 되었다.

광복회 파주지회, 전국의 모범사례가 되어

파주시에서는 올해 특별히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100주년 기념 사업추진단을 만들어 17개의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 사업의 중추 역할을 하는 광복회 부준효 파주지회장을 찾았다. 보훈회관 2층 광복회 파주지회에서 만난 부준효 회장은 경쾌하고도 시원한 큰 목소리로 우리를 맞았다.

부준효 회장은 5년전 대한민국 최연소(당시 57) 광복회장이 되어 타 시군에 비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파주의 독립운동가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월별로 2명씩 이 달의 파주독립운동가를 정하여 파주시 관내 300개 버스안내판(BIS)에 매달 게시하고 있고, 파주시와 파주시교육청 홈페이지에도 게시하도록 운동을 펼쳤다. 우리는 버스정류장에서 흔히 접할 수 있어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 사업도 전국 237개의 지자체에서 파주만 시행하고 있는 모범적인 활동이었다. 국가보훈처에서 연락이 와서 이 홍보사업에 대해 어떻게 했는가를 문의하기도 했다고 한다.

올해는 3.1절 기념사업 내용을 광복회 각 지역에 알려서 의미있는 행사를 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각 시 도 단위 다른 곳은 평균 3~5개 사업을 하는데 반해, 파주는 17개를 하고 있어 모범이 되고 있는 것이다. 파주시의 기념행사나 활동을 의미있고 가치있는 사업경기도 사례로 부준효 회장이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경기도 31개 시군에 이메일로 알려주었다 한다. 파주 홍보대사 역할도 하는 셈이다.

 

생존해계신 민영주 여성독립운동가 문안토록

또 파주시장과 국회의원, ·도의원들에게 자유로요양병원에 계신 여성독립운동가 민영주 선생을 찾아 예를 갖추도록 요청하여 시민의 귀감이 되도록 한 바 있다. 민영주 애국지사는 독립운동가 민필호(임정 비서실장)와 신명호(독립운동가 신규식의 외딸)의 장녀이자 김준엽(전 고려대 총장) 선생의 부인으로 현재 생존해 있는 여성 독립운동가 3인 중 1인이다. 임시정부 주석 판공실 서기로 근무하고, 광복군 제2지대 대원 등으로 활동했으며 그 공훈으로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서훈됐다.

지금 독립운동가 35명 생존해 계시고, 이중 여성 3명이 살아계신데 그중 1명이 민영주 애국지사입니다. 독립운동가에 예우를 갖추는 것은 파주시민들에게 귀감이 됩니다. 살아계신 독립운동가를 만나는 것은 글로 만나는 것과 차원이 다릅니다.”

부준효 회장은 학생들도 생존해 계신 독립운동가를 찾아 뵙는 것이야말로 살아있는 역사교육이 된다고 역설했다.

 

3.1100주년 기념행사 남북공동개최는 안되지만...

파주시에서는 100주년 31절 기념행사 남북공동 개최를 계획하였다. 남북의 주민들이 모여 임진각역에서 평화누리까지 만세운동 재현하는 계획까지 세웠다. 러나 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남북간, 북미간 협상이 진척되지 않으면서 지방단위의 남북협력은 속도를 내지 못하여 올해 남북공동개최는 어려운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대신 매년 하는 3.1절 기념행사를 다채롭고 내실있게 하려고 여러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학생들 동원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전부터 봉일천중, 금촌중, 광탄중고, 세경고, 한민고 5개교와 나라사랑실천학교 업무협약을 맺어 현장 역사교육이 되도록 협조를 구했습니다.” 1919년 당시 3,000여명이 모여 공릉장날 만세운동을 펼친 그날을 재현할 계획도 세우고 있었다. “학생들 교복을 입히고, 일제복장 입은 사람들 나와서 체포하도록 하는 시나리오를 넣어서 재현행사를 할 계획입니다.”

독립운동가 초상화전, 일제침략 사진전도 행사장에서 펼쳐진다.

지난 달 국회로비에서 있었던 북한미술전에 출품되었던 북한 작품을 이종걸 의원과 협의하여 30점을 파주에 전시하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부준효 지회장은 역사의 기록과 교육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독립운동사적지 7곳에 대한 현황조사와, 파주독립운동사 재발간, 파주독립운동사 영상 제작을 파주시에 건의했다고 한다.

 

국립묘지의 애국지사 묘역에 계신 아버지를 뒤를 이어

부준효 회장의 아버지 부임전은 일본 오사카(大阪) 전문대학에 재학중 1940년 계림(鷄林)동지회 결성하여 항일 활동을 하다 1941년 일경에게 체포되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1945년 광복 후 귀향, 향리의 북촌초등학교의 교사로 출발, 또 표선초등학교 교감까지 역임하였으나, 197758세 나이로 사망했다. 1990년 정부에서는 그의 공적을 기리어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고, 1996년 국립 현충원 즉, 대전 국립묘지의 애국지사 묘역에 부부 합장(合葬)하였다.

이장 당시 차남 부준효(夫俊)는 현역 육군 중령으로서 이를 지켜보면서 자신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다음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국립묘지에 묻힐 것을 굳게 맹세하였다.’고 기록에 남아있다(자료출처 : 김찬흡 북제주문화원 원장). 대한민국 최연소 광복회장이 된 부준효 지회장은 아버지의 국립현충원 이장때 한 맹세를 실천하며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국가와 민족에 헌신하고 있는 것이다.

 

▲파주시보훈단체가 윤후덕,국정 국회의원을 모시고 간담회를 했다.

파주가 고향이 된 사람

파주는 부준효 회장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제주에서 태어났으나, 35년을 파주에서 살았고, 금은 파주 토박이 부인 박미영교장의 금촌사랑을 질투할 만큼 파주를 사랑한다. 현재 대전대학교 군사연구원 및 겸임교수, 파주시 국가보훈단체 협의회 사무총장 및 파주시 경범죄 심사위원, 한민족 독립정신연구회 연구소장 및 광복회 전문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부준효 회장은 젊었을 때 선유리 옆 신병교육대 탱크부대에서 10년을 근무했다. 이 부대 인접에 문산동초등학교가 있었는데, 부대장 자녀의 담임이 박미영 선생이었다. 어느날 부대장이 불러서 갔더니 그 자리에 박미영 선생이 있었고, 이후 연예를 하여 결혼하게 된 것이다.

그는 어떤 파주 사람보다 파주의 독립운동 사적지, 역사와 인물을 훤히 꿰고 있다. 파주사람 이상으로 뼛속까지 파주사람 같다.

 

파주시 독립유공자는 160

파주는 경기 북부의 최대 독립 운동지로 일제 강점기에 활약한 파주시 독립유공자는 160분이 계십니다. 특히 박찬익선생님, 정용대선생님, 정태진선생님, 윤기섭선생님 등 인재가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독립군 양성에 앞장선 임시정부요인 윤기섭선생님은 파주에서 출생하여 자주 독립·민중 계몽 등의 민족 운동에 앞장서신 것은 물론이고 경술국치 후 항일 민족 독립 운동에 뜻을 두고 만주로 망명했죠. 이후 신흥무관학교에서 교감과 교장을 역임하면서 약 2,100여 명의 독립군 정예들을 양성했습니다. 임시 정부 군무원과 의장으로 선임되었고, 국무위원을 역임하셨고 제2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셨습니다. 정부에서는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되어 그 넋을 기리고 있습니다.”

덧붙여 파주에서 박찬익 선생님에 대해 아무도 신경을 쓰고 있지 않는다고 통탄을 하셨다. “광복 70주년에 경기도박물관에서 1억을 들여 박찬익 특별전을 했습니다. 제가 파주시에 얘기도 하고 여러 애를 썼는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광복회원 30명만 모시고 전시에 다녀왔는데, 참으로 답답했습니다.”

이웃 양주에서는 2016년에 55억을 들여 조소앙선생기념관을 만들었습니다. 조소앙선생은 파주에서 태어났으나, 2살 이후 양주에서 살아서 양주에서 기념관을 만든 것입니다. 파주에는 인물이 많습니다. 파주의 박찬익, 윤기섭, 정용대 선생님 기념관은 왜 못 만듭니까?”

나라사랑 만큼 파주를 사랑하는 부준효 회장은 올해 보훈처에서 여성, 의병, 학생을 발굴해서 표창을 주도록 하는 사업, 국가가 나서서 자료를 발굴하는 사업 등을 소개하며 덧붙여 말했다.

정부는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친일적폐청산부터 실천해야한다고 봅니다. 친일적폐청산을 통하여 왜곡된 민족사를 바로 쓰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야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조가 될 것입니다.”

감기로 목이 아프시다했지만, 독립운동가 얘기가 나오니 더 크고 우렁찬 목소리로 열정적으로 말씀하셨다. 부준효 회장님의 열정으로 파주의 독립운동가들이 새롭게 조명되고 파주학생들이 독립운동 사적지를 현장체험하는 날이 머지 않아 올 것이라는 믿음이 절로 생겼다.

임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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